칠레 역사에선 흔히 이 사람을 미친 사람 취급합니다만, 납치 당시 칠레 정부는 오르리 앙투안이 프랑스 정부 나폴레옹 3세의 야심과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심각한 위협으로도 보았습니다. 이 자를 축으로 마푸체들이 프랑스 무기를 들여와 저항하지 않을까, 프랑스가 마푸체를 발판으로 삼아 남아메리카에 쳐들어오지 않을까 걱정하기도 했습니다. 실제 1861년 프랑스가 멕시코에 쳐들어온 사건을 생각하면 의미 없는 두려움은 아니었을 거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재미있는 건 이 때 프랑스의 제국주의를 비난하며 아메리카 동맹 따위를 생각한 자들 중에 아라우카니아 침략은 적극 찬동한 이들도 있다는 겁니다.
이하는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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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곁에선 모두 내가 처형당할 것이란 말 뿐이니 여기서 내 정치에 대한 유언을 남기는 것이 내 의무일 것이다. -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ml:namespace prefix = o />
짐, 오르리 앙투안 1(Orllie-Antoine I)세는 독신이다. 프랑스 도루도뉴(Dordogne) 지방, 페리귀(Périgueux) 구역, 오트포르(Hautefort) 칸톤(행정 구역), 슈르냑(Chourgnac) 구의 라세즈(La Chaise)라 하는 곳에서 1825년 5월 12일에 태어났고, 하나님이 내리신 복과 백성의 뜻으로 아라우코 민족과 파타곤 민족의 왕이 되었다.
짐은 1860년 11월 17일에 제정한 우리 법률을 발파라이소에서 발행하는 신문 엘메르쿠리오의 12월 29일 판에 공포하였다. 우리는 그 법률에서 아라우카니아에 입헌군주정을 세우며 그 왕위는 영구히 내 자손에게 상속됨을 알렸다. 내 자손이 없을 때 왕위는 뒷날 정할 규칙에 따라 내 방계 가족이 물려받는다.
우리는 같은 달 20일 법률에서 파타곤 민족의 동의를 얻어 파타고니아를 우리 아라우카니아 왕국에 편입하였으며 아라우카니아와 동일한 헌법을 부여했다.
지난 12월 25일, 26일, 27일, 30일에 걸쳐 진행한 회의에는 레비우, 비야빌, 구엔트콜이 이끄는 부족 및 아라아코 민족과 파타곤 민족의 대표를 맡은 다른 우두머리들이 참여하였다. 이 회의는 짐을 왕으로 선포하고 앞서 이야기한 법령을 승인했다.
칠레 정부는 짐이 왕위에 오른 것을 알고 짐의 자유를 빼앗기로 하고 짐의 통역관과 시종들을 꼬드겼다. 이들은 미리 준비한 지점으로 이 달 15일에 짐을 유도해 기습하게 하는 배신을 저질렀다.
이 비열한 간섭은 외세가 저지른 것이며 막 짐을 왕으로 인정한 원주민들은 전혀 참여하지 않았다. 따라서 이 일은 원주민들이 짐에게 수여한 권리를 전혀 해치지 않는다.
아무래도 짐의 죽음이 가까워 오는 것 같으니 오늘부터 계승권 문제를 정리하는 것이 짐의 의무일 것이다. 아라우카니아와 파타고니아의 왕좌를 내 후계자들이 잇게 할 것이다.
짐의 친애하는 아버지 장 드 투넹(Jean de Tounens)이 계승 1 순위, 그 분이 계승하지 않을 때에는 짐의 아들은 아들 장 드 투넹(Jean de Tounens hijo)이, 아들 장 드 투넹도 왕위를 잇지 않을 때에는 그 아들은 아드리앙 장 드 투넹과 그 직계 후손들이 영구히 왕위를 잇는다.
짐의 사랑하는 사촌이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 그 핏줄이 끊길 때엔 그 자리를 자매인 짐의 사랑하는 사촌딸 리다 잔 드 투넹(Lida-Jeanne de Tounens)과 그 직계 후손이 잇는다.
리다 잔 드 투넹조차도 자손을 남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 그 핏줄이 끊길 때엔 짐의 둘째 동생과 그 후손의 직계로 영구히 왕위를 물려준다.
계승권이 높은 쪽이 죽고 핏줄이 끊길 때에는 짐의 셋째, 넷째, 다섯째 형제와 그 자손들 역시 동일한 권리를 누린다.
같은 핏줄에선 늘 남성 계승자가 여성 계승자보다 더 높은 계승권을 누린다.
짐의 다섯 형제들의 핏줄이 모두 끊길 경우엔 짐의 사랑하는 세 자매들이 동일한 방식으로 권리를 물려받는다.
오르리 앙투안 1세 서명
1862년 1월 25일 로스 앙헬레스 감옥에서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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